[할머니, 우리 할머니]
할머니를 지키는 열여덟 형운이 : 떠나간 할아버지를 그리며, 형운이가 홀로 할머니의 곁을 지켜온 지도 어느덧 8개월이 됐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돌도 지나기 전부터 조부모님 품에서 자라온 형운이. 기억도 나지 않는 엄마와 제대로 얼굴 보는 날도 없던 아빠 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형운이의 엄마였고, 아빠였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작년 5월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시면서 큰 슬픔에 잠겼던 형운이. 하지만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의 기력이 급격히 쇠하면서 치매 증세가 심해졌기 때문인데. 그동안 시장에서 나물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오던 할머니는 이제 밖을 나서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할머니의 곁에서 매 끼니를 챙기고, 손수 요강을 비우고, 집안 살림을 도맡는 열여덟 형운이. 할머니가 낯선 외부인들을 경계하던 탓에 요양보호 서비스를 받을 수도 없어 홀로 할머니를 챙겨왔단다. 친가 어른들이 한 번씩 집안을 살펴주시지만, 여든이 넘은 연로한 할머니를 혼자 모신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인데. 그래도 그저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속 깊은 아이. 오늘도 형운이는 흩어져 가는 할머니의 기억을 붙잡으며 할머니를 지키고 있다. # 포기를 모르는 소년의 도전 : 누구보다 할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형운이지만, 사실 형운이에겐 모든 것들이 도전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에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긴급 수술에 들어간 형운이. 이후 소뇌 손상으로 인한 뇌 병변 장애를 진단받게 됐다. 수술 이후에는 홀로 걷는 것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형운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노력과 활동 보조 선생님의 도움으로 끊임없이 걷고, 말하기 연습을 하면서 점차 나아질 수 있었다는데. 지금도 소뇌 손상으로 인한 운동 기능 문제로 다리를 절뚝이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 행동 하나에도 많은 힘이 필요한 형운이. 하루아침에 장애를 갖게 되고, 몸이 불편해졌지만 형운이는 한 번도 좌절하거나 포기한 적이 없다. 걷는 연습을 하는 동안 몇 번을 넘어지면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몸이 불편해지면서 일상에 더 감사함을 느꼈다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 살림에 요리, 장보기 등 홀로 하는 모든 것들이 도전이었던 형운이. 아직도 어려운 것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할머니를 위해 시장을 찾고, 아궁이 앞을 지키며 불을 때고, 또 땔감을 찾아 산을 오른다. 지금은 자신보다 할머니가 걱정이라는 형운이. 할머니마저 곁을 떠나시면 어쩌나, 자신이 잘 챙겨드리지 못하면 어쩌나. 할머니를 더 잘 보살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운동도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 자신의 사전엔 포기 대신 도전만 있다고 말하는 당찬 소년, 형운이의 도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 형운이의 바람 : 항상 “운아, 운아.” 하고 다정히 불러주던 할머니. 자신의 나이도, 때로는 가족들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형운이는 항상 본인의 이름을 되묻는다. 그때마다 어렵사리 손자의 이름을 기억해 불러주는 할머니. 언젠가 할머니가 자신의 이름마저 잊게 될까 겁이 나지만, 그래도 아직 할머니가 “운아.” 하고 불러주시는 게 다행스럽기만 하다. 형운이의 바람은 할머니께 더 효도할 수 있을 때까지 할머니가 곁에 계시는 것.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받아온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는 일이다. 그렇게 갖게 된 형운이의 꿈은 사회복지 공무원. 2년 전, 활동 보호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형운이는 컴퓨터에 남다른 실력을 보이고 있다는데. 그동안 취득한 컴퓨터 관련 자격증만 해도 다섯 개에 대회 수상도 여러 번이라고. 속도는 느리지만 하고자 하는 마음과 노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형운이.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될 수 있다고 믿기에 할머니를 챙기는 일도 꿈을 향한 노력도 성실하게 해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