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다 – 경상북도 안동시.
안동 사람들의 마음속에 흐르는 강이 있다. 낙동강이다. 지금은 한적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부산과 안동을 잇는 소금배들이 즐비했다는 곳. 세월이 흘렀지만 안동 사람들은 그 배를 잊지 않았다. 나루터에 정박해 있는 황포돛배. 이 황포돛배를 타고 안동에 남아있는 옛 기억을 쫓아 2025년 동네 한 바퀴 첫 여정을 시작한다. ▶ 깊은 산골 마을 청년 어부의 진심 : 세 개의 큰 산에 포근히 감싸져 있는 임하호. 여기에 매일 같이 출근한다는 30대 청년 권선혁 씨를 만난다. 선혁 씨가 사는 검박골 마을은 차를 타고 산으로 20분은 들어가야 하는 곳. 변변한 전답도 없는 이 마을에서 선혁 씨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산골 어부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대학을 나와 도시에서 직장 생활까지 했었는데 산골 마을에 다시 돌아오겠다니.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아버지는 속이 터질 지경이다. 그래도 검박골 마을이 좋다는 선혁 씨. 3년 전부터 마을 이장에 영농회장까지 맡으며 마을을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임하호에 나가 제철 쏘가리를 낚아왔다는 선혁 씨. 동네지기가 찾아온 기념으로 귀한 쏘가리 회와 매운탕을 대접해준다는데. 청년 어부의 진심은 백 마디 말보다 이 쏘가리 한 상으로 전해진다. ▶ 세계 유일 ‘철사 화가’가 그리는 행복 : 오래된 한옥이 곳곳에 남아있는 태화동. 동네지기의 눈에 빨간 꽃이 그려진 벽화가 눈에 띄는데... 궁금해서 벽화가 그려진 저택에 들어가 보니 녹슨 철사를 가지고 놀고 있는 김영목 씨가 있다. 돌고래, 여자, 달 등등 철사로 다양한 모양을 능숙하게 만드는 영목 씨. 이 녹슨 철사로 그림까지 그린다고? 사연인즉 산골 마을 농부의 막둥이로 태어난 영목 씨는 어릴 적 갖고 놀 변변한 장난감 하나 없었단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의 반대와 가난함을 무릅쓰고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을 때 떠오른 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녹슨 철사였다고. 녹슨 철사처럼 삶에 켜켜이 쌓인 행복한 기억을 철사로 그려낸다는 영목 씨. 19년 동안 그려온 세계 유일 ‘철사 그림’에 담긴 추억들을 들어본다. ▶ 옛 선비의 향기를 찾아, 선성현 문화단지 :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선성현 관아를 예끼마을에 재현해놓았다는 선성현 문화단지. 수령이 근무했던 한옥과 죄인들을 벌하던 형틀과 곤장틀 등 옛 사극에나 보던 풍경들이 즐비한데. 그곳에서 산책하던 동네지기는 그림을 그리는 한 무리의 서생을 발견한다. 드라마 촬영이라도 하는 것일까? 알고 보니 안동에서 즐길 수 있는 「선비 사색 트레킹」 중이란다. 도포를 입고 유교 관광지를 산책하며 전통과 역사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이라는데. 인천 출신 유아란 씨가 안동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구상한 것. 타지 청년의 기특한 마음씨에 DMO(지역관광추진조직)와 마을 주민들도 도와 이 아이디어를 실현했다. 이제는 MZ세대 아란 씨의 쉽고 재밌는 유교 이야기를 들으러 사람들이 예끼마을로 찾아온다고. 「선비 사색 트레킹」의 백미는 ‘유교 조언 상자’! 고민에 대한 옛 성현들의 조언을 뽑아볼 수 있다는데. 을사년에 동네 한 바퀴를 잘 돌 수 있도록 동네지기도 조언 하나를 뽑아본다. 그 내용은 과연? ▶ 금소마을에서 보내는 특별한 하루, 「금양연화」 하얀 한복을 입고 제를 지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 갑자기 땅에 구멍을 뚫더니 그 속으로 물을 붓기 시작하는데... 그리고 그 옆에 묻혀있는 건 다름 아닌 닭고기, 돼지고기, 고구마 같은 음식들이라고? 이게 바로 옛날에 삼을 찌기 위한 풍습이었던 삼굿을 응용한 ‘삼굿구이’! 안동포로 유명한 금소마을에서 마을을 살리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거란다. 옛날에는 3천 명이 넘는 인구수를 자랑했지만, 하나둘 사람들이 빠져나가며 활기를 잃어가던 금소마을. 이를 두고 볼 수 없던 주민들이, 한국관광공사가 지원해 각 지역의 새로운 관광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DMO(지역관광추진조직)와 합심해 마을 여행 상품 「금양연화」를 기획하게 되었다. 삼굿구이, 전통 막걸리 만들기, 쿠킹 클래스 등등 다양한 체험부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고택 숙박까지. 최근 ‘머물고 싶은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는 금소마을.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의 하루는 얼마나 특별할까? ▶ 장승 장인이 깎아낸 한국인의 얼굴 : 여기도 장승, 저기도 장승. 안동 하회마을로 가는 길목에는 장승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여기엔 성성한 백발을 휘날리며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조각하는 이의 노고가 있었으니... 바로 장승 장인 김종흥 씨다. 날 때부터 좋은 손재주를 가진 종흥 씨는 이발사로 살다가 40년 전 갑작스레 나무와의 동행을 시작했다. 장승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이다.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도 그의 열정을 만류했었지만, 지금은 해외 명사들까지 인정하는 장승 장인이 되었다고. 그의 야심작은 국보 하회탈과 장승을 합친 ‘하회탈 장승’! 누구보다 한류에 앞장서는 70세 노장 종흥 씨의 뜨거운 열정을 만나본다. ▶ 엄마의 마음이 담긴 건강 밥상 : ‘음식에는 마음이 담겨야 한다.’ 도산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미옥 씨가 항상 새기는 말이다. 매일같이 밭과 산을 오가며 나물과 채소를 구한다는 미옥 씨. 음식 맛을 내는데는 제철 과일과 견과류를 꼭 사용한다는데. 이 번거로운 과정에도 건강한 음식을 고집하는 건, 늦둥이 딸을 위해서다. 13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어렵게 딸을 낳았지만,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아토피를 앓았던 것. 미옥 씨는 딸과 함께 안동에 내려와 요리를 공부하고 밭을 일궜다. 미옥 씨의 정성이 통한 걸까? 딸은 건강을 회복하고 어엿한 청년이 되었단다. 요새도 딸에게 줄 반찬 만드는 맛으로 산다는 미옥 씨. 그 마음을 담아 내놓는 건강 밥상 맛은 어떨까. 여기에 막걸리와 함께 나오는 안주상도 만나본다. 얼핏 보면 그냥 김치전과 강정처럼 보이는데. 안동의 특산물인 참마와 수확 중에 버려지는 마 씨앗을 활용했단다. DMO(지역관광추진조직)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한 안동 전통주와 어울리는 안주 개발 공모전 「기미주안(氣味酒案)」에서 우수상을 받은 미옥 씨의 작품이다. 안동 막걸리와 찰떡궁합이라는 「기미주안」 한 상 맛은 과연? ▶ 안동의 중심, 대동루에서 신년 맞이 : 안동 시내에 자리 잡은 웅부공원. 고려 공민왕 때부터 1995년까지 관청이 자리했던 안동의 중심이다. 지금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인 영가헌과 대동루를 복원해놓아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역사의 배움터로 탈바꿈했다. 안동의 오랜 역사가 이어지는 이곳에서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해본다.